음악과 함께 기억되는 순간

음악과 함께 기억되는 순간 ep. 01. 비디오 킬 더 라디오 스타 : 나의 첫 뮤직비디오 (ft. 아하 Take On Me)

순풍ㅇ 2024. 7. 22. 18:52

 

소설가 김연수 작가의 <지지 않는다는 말>에는 어린 시절 즐겨듣던 노래와 관련된 기억을 풍경, 냄새, 소리로 묘사하는 에피소드가 있다.

 

그러고 보면, 내가 처음 비틀스의 음반을 산 지도 3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다.

오아시스 레코드의 은빛 케이스에 든 1위 모음집이었다. 그 테이프에서는 '헤이 주드 Hey Jude'가 제일 좋았다. 지금도 그 노래의 후렴구를 흥얼거리면 "나 나나 나나나나~"

오래전 우리 집 골목과 그 골목의 초입에 있던, '영상'이라는 고전적인 제목의 음반가게가 떠오른다.

지지 않는다는 말, 김연수

에게도 특별하게 기억되는 무수히 많은 날들이 있는데, 그런 날들은 꼭 음악과 이미지가 결합된 공감각적 기억으로 오래 남아 있곤 한다.

 

여섯 살 때부터 FM 라디오를 듣고 자란 나에게 음악이란 '노랫말이 있는 멜로디' 정도로 생각되었다. 그런데, 열두 살이 되던 어느 날, DJ 김광한 아저씨가 진행하는 특집 프로그램을 통해 난생처음으로 뮤직비디오란 걸 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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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J 김광한 아저씨

"Video Killed the Radio Star" 하는 순간이 있었으니, 그날 나는 생애 처음으로 뮤비란 걸 보고 얼어붙고 말았다.

 

 

르웨이 3인조 밴드 Aha가 부르는 'Take on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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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ha take on me, 아하 테이크 온 미

 

신시사이저라는 악기로 믹싱 된 전자 사운드와 함께 빠른 비트의 멜로디가 '빠바바바 빰빠 빰빠 빠바바바 ~" 울러퍼지며 만화책 속에서 3명의 젊은 청년들이 기타, 드럼, 건반을 연주하며 노래를 부른다.

 

뮤직비디오의 여자 주인공은 만화책 속의 남자 '모튼 하켓'이 윙크하는 모습을 보고 깜짝 놀라고,

만화 속의 '모튼 하켓'이 내민 손을 잡고 만화 속으로 퐁당~ 빠져 들어간다. 여자 주인공은 음악에 맞추어 메인 보컬인 '모튼 하켓'과 함께 춤을 추고, 노래가 끝나면 다시 만화책 밖으로 나온다.

 

1985년에 제작된 뮤직비디오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세련된 스타일이라 지금 봐도 촌스럽지가 않다.

 

 

 

 

시 우리 집에는 로터리 방식으로 방송 채널을 바꿀 수 있는 14인치 흑백텔레비전이 있었다. 김광한 DJ 아저씨는 '쇼 비디오자키'라는 코너를 통해서, 빌보드의 인기 곡들을 뮤직비디오와 함께 팝스타들을 소개해 주었다. 그 시간이 되면 나는 작은 텔레비전 앞에 앉아서 그 코너를 기다리곤 했다.

 

 

1996년 그해부터 내 인생의 톱스타는 단언 컨 테 노르웨이 3인조 밴드 '아하'의 메인 보컬인 모튼하켓이었다. 그날부터 모튼하켓의 브로마이드를 모으기 시작했고, 내 방 벽에 모튼하켓의 브로마이드와 잡지에서 오린 사진들로 도배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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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ha-아하 모튼하켓

 

Take on Me에 이은 Manhattan Skyline이라는 새로운 곡이 라디오를 타고 흘러나올 때, 공테이프를 구해다가 녹음해서 무한 반복해서 듣곤 했다.

 

메인 보컬인 모튼하켓을 너무 좋아해서 중학교 1학년 여름방학 때 국어 숙제로 원고지 수백 장의 팬픽(Fan-Fiction)을 써서 제출한 적이 있다. 유치하기 그지없는 내용 (노르웨이 왕자들 Aha와 열성 팬인 여중생이 사랑에 빠진다는 이야기)

 

당시 국어선생님께서 해 주신 말씀은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내용이야 어찌 되었든 간에, 중학교 1학년 학생이 수백 장의 소설을 썼다는 것은 굉장한 시도임이 분명하다"

 

그렇게 모튼하켓에 대한 사랑은 깊어가고 있었는데, 중학교 2학년이 되던 해에 나의 모튼하켓은 노르웨이 왕족의 딸과 결혼해 버리고 만다. 그렇게 내 사랑은 일장춘몽, 아니 물거품이 된 인어공주의 사랑과도 같았다.

 


대 소녀에게 상처를 주고 떠난 모튼하켓은 소녀가 20대 중반이 되던 어느 해에 '컨스피러시'라는 영화의 OST를 부르며 다시 나의 가슴속으로 들어왔다. "Can't Take My Eyes Off You" 라는 노래와 함께.

 

 

You're just too good to be true

Can't take my eyes off of you

You'd be like Heaven to touch

I wanna hold you so much

At long last, love has arrived

And I thank God I'm alive

You're just too good to be true

Can't take my eyes off of you

Pardon the way that I stare

There's nothin' else to compare

The sight of you leaves me weak

There are no words left to speak

But if you feel like I feel

Please let me know that it's real

You're just too good to be true

Can't take my eyes off of you

 

I love you, baby

And if it's quite alright

I need you, baby

To warm the lonely night

I love you, baby

Trust in me when I say

 

Oh, pretty baby

Don't bring me down, I pray

Oh, pretty baby

Now that I've found you, stay

And let me love you, baby

Let me love you

- Can't take my eyes off you by 모튼 하켓

 

Aha는 'Take on Me'라는 곡 외는 메가 히트곡이 없다. 평생 노래 한 곡으로 먹고사는 그룹이라고 할 수 있지. 지금도 전 세계를 투어링 하며 콘서트를 하고 계신데, 내 버킷 리스트 중 하나는 Aha의 유럽 현지 라이브 공연을 보는 것이다.

 

이따금 모튼 하켓의 나이 든 모습을 지켜보느라고 유럽 공연 영상을 찾아보곤 하는데

멋있게 늙어가고 계셔서 참 다행이다 싶다. 2005년 베를린 라이브 영상을 한 번 보자.

 

 

 

영상을 보면서 십 대 시절의 순수했던 나를 떠올리고

언젠가 그의 노래를 직접 떼창하며 부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Cold Play도 멋진 가수고 그들의 공연 영상을 보면 막 흥분되긴 하지만

그래도 내게는 Aha, 모튼하켓이 최고의 가수고

아직도 설레게 만든다.

 

 

어제보다 더 나은 오늘

순풍의 매일 1% 성장하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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